두터운 가면들을 벗어둘 곳을 찾아 흘러온 나그네
by 카멜레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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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아직도 기억하기에.

열패감에 젖은 채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이었다.
부옇게 내리는 비와 함께 시야를 흩어 버린 눈물.
그러면서 언뜻 떠오르던 한 사람의 얼굴.
비록 한때뿐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를 꽤 좋게 여겼던 것 같다.
그럼에도...
앞으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될지도 불투명해져 버렸던 그때
아무 것도 내세울 수도 약속할 수도 없는 자신이 너무 못나서
끝내 한 마디 꺼내지도 못한 채 그렇게 버스에 몸을 맡기고 달려 멀어져 갔던 날.

아마 나는 딱히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.
어떻게든 기어올라서 다시 살고자 했고 그러고자 하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.
그럼에도 아직도 그날이 나에게 상처로 남아 있는 건...
그렇게 다시 무언가를 이루고 난 그때 내 곁에는 그가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,
알면서도 결국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었기 때문이다.
그 날 이후로 나와 그의 시간은 점점 서로에게 먼 곳으로 달려갈 거란 걸 알면서도
또 잊혀져 가면 그만이겠지 애써 자신을 타이르며 마음을 닫아 버리려 했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.

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.
하지만 조금 더 사랑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하고
충분히 용기 낼 수도 있었는데 지레 꼬리를 내려 버렸던 그때의 내가
나는 지금도 부끄럽다.

그날 이후로 나를 이끌어 왔던 원동력 중의 하나는
적어도 내가 부족해서 소중한 것을 잃지는 않을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이었다.
그리고 그쪽으로는 일단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,
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건
완전한 자신이 되는 것으로도 충분치 않은 어떤 마음의 작용인 것 같다.
그게 조금 많이 어렵게 느껴지는 날엔 그 날이 가끔 떠올라 쿡쿡 쑤시기도 한다.

신기한 건, 그것을 상처로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떠오를 때마다 결국은
그때처럼 놓치지 않기 위해선 조금 더 많이 사랑해야겠구나...
라면서 마음을 다잡게 된다는 것이다.
지금 사랑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사랑하는 일이 참 어렵지만
그래도... 이런 순간들이 있기에 꽤나 인생에서 할 만한 일인 것 같다.
그 날의 그 사람의 존재가,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의 존재가 참 고맙다.

by 카멜레온 | 2011/06/30 16:09 | 심상의 움직임 | 트랙백 | 덧글(0)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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